“ 역사적 그날 351회 ”
2022년 3월 13일 일요일 밤 10시 30분 방송
# 리더의 눈물과 선택, 그렇게 성군이 되다
④ 정조 살아남기 위하여
# 조선 최후의 성군 정조 그는 누구인가?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최고의 성군 정조. 문무 겸장의 군주이자 늘 백성을 생각한 애민 정신까지...
이런 정조에게도 뗄 수 없는 꼬리표가 하나 있었는데.
“미치광이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일어서야 했던 정조 사도세자의 아들에서 성군이 되다에서 이야기를 들어본다.
# 역적 사도세자의 아들 이 산
1762년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다.
당시 정조의 나이 고작 열 살.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빠져있을 틈도 없이 정조는 왕위를 이을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려야 했으며 즉위 후에도 여러 차례 암살의 위협을 받게 된다.
조직적인 암살 위협에 정조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철저한 외톨이일 수밖에 없었다.
# 사도세자 #
본 명: 이선
이 칭: 장헌세자
자 : 윤관
호 : 의재
출 생 지: 한성부 창경궁 집복현
출 생: 1735년~1762년
#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세자.
어머니는 영빈이씨이며, 부인은 영의정 홍봉한의 딸 혜경궁 홍씨로 태어난 지 1년 만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0세 때 혼인했다.
영조 즉위에 관련된 신임사화와 같은 중요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 부왕과는 다른 의견으로 대립이 심화 되었다.
이에 결국 영조는 세자에게 자결을 명했다.
세자가 끝내 자결을 하지 않자, 그를 서인으로 폐하고 뒤주 속에 가두어 8일 만에 죽게 했다.
죽은 뒤 바로 사도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그의 아들인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으로 추존되었다.
(다음백과 출처)
# 정조의 사랑, 의빈 성씨 성덕임
그 와중에서도 정조의 안식처가 되어준 한 사람이 있었으니...
최근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을 통해 화제가 된 정조의 의빈 성씨의 러브스토리를 다시 한번 조명한다.
세손 시절부터 정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궁녀 성덕임...
하지만 두 번이나 정조의 구애를 거절한다.
한탄 궁녀가 세손의 승은을 거절한 이유부터 사랑의 결실을 맺는 과정 그리고 가슴 아픈 이별까지, 두 사람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낱낱이 파헤쳐보는 시간, 의빈 성씨와 아들 문효세자의 묘가 위치한 서삼릉을 직접 찾아가 두 사람이 함께 묻혔던 효창원에 담긴 안타까운 사연까지 만나본다.
# 위민의 마음으로 성군 정조
1793년 금등지사를 공개하며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예를 회복시킨 정조는 이듬해 자신의 이상을 담아 수원 화성 축조를 시작한다.
화성을 건설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가 얼마나 백성을 생각하고, 백성의 아버지로 존재하고자 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조선왕조 마지막 성군이었던 정조...
그러나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정조는 과연 행복했을까?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정조가 성군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성장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 그로부터 리더가 지녀야 할 덕목이란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 정조 #
시 대: 조선
출 생: 1752년 (영조28) 9월 22일
사 망: 1800년 (정조23) 6월 28일
본 명: 이산
본 관: 전주
# 정조는 1752년(영28) 9월 22일 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휘는 산, 자는 형운이다.
“첫돌이 되었을 때 돌상에 차려진 수많은, 노리갯감들은 하나도 거들떠보지 않고 그저 다소곳이 앉아 책만 펴들고 읽었다”라고 할 만큼 어려서부터 학문을 사랑했다.
1762년 (영조38) 정조의 나이 11세때 대 생부인 사도세자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했다.
정조는 울면서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이성을 잃은 영조는 물론이고 집권 세력인 노론들은 그런 정조를 외면했다.
사도세자가 죽자 정조는 영조의 큰아들 호장세자에게 입적되었다.
그러나 정조는 마음속으로 언제나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잊지 않았다.
엄격한 영조 그리고 자신에게 등을 돌린 외척과 노론 세력에 둘러싸인 세손의 처지는 외롭고 괴로웠다.
그런 세손을 비호하며 충복을 자처한 사람은 시강원 춘방관이었던 홍국이었다.
야심가였던 홍국영은 의지할 곳 없는 세손의 신뢰를 얻었고, 세손이 홍인한, 정후겸(화완옹주의 양자)을 위시한 외척 세력과 척을 지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음백과 출처)
2022년 1월 13일 일요일 밤 10시 30분 방송하는 “역사적 그날”에서 리더의 눈물과 선택 그렇게 성군이 되다 편에서 정조 이야기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