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저널 그날 352회”
2022년 3월 20일 일요일 밤 10시 30분 방송
# 철의 장막 소련 70년
① 소련의 탄생 러시아. 우크라이나 갈등의 싹을 틔우다
#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역사에 실마리가 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 세계의 반발과 우려에도 그 실마리가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 단순한 이웃나라가 아니며, 현재의 우크라이나는 볼셰비키 즉 공산주의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졌다”
전쟁에 앞서 역사를 언급한 푸틴 대통령...
이처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정치.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두 나라으 역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준비한 기획, “철의 장막 소련 70년”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소련의 탄생 러시아. 우크라이나 갈등의 싹을 틔우다 편에서 알아본다.
# 철의 장막 #
철의 장막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이 구축한 정치적. 군사적. 이데올로기적 장벽을 말한다.
# 소련은 자국과 예속적인 동맹국들이 서방 국가들을 포함한 비공산권 지역들과 공공연히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장벽을 세웠다.
철의 장막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였지만, 유명하게 된 것은 1946년 3월 3일 미국의 미주리 주 폴턴에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전시내각 총리가 연설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고 난 다음부터였다.
처칠은 연설에서 공산국가들이 “발트 해의 슈체친으로부터 아드리아 해의 트리에스테까지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 철의 장막을 형성했다.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한 중국이 1949년 이와 비슷한 고립 정책을 채택했을 때 중국과 소련의 정책을 구별하기 위해 중국의 정책에는 ”죽의 장막“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철의 장막의 구속력과 견고성은 1953년 스탈린의 사망이 후 상당히 완화되었으며, 1980년대 중반 위성방송이 실시 되면서 서서히 붕괴 되어갔다.
(다음백과 출처)
# 우크라이나, 그곳이 알고 싶다
최근 우크라이나 수도를 러시아식 발음인 “키예프” 대신 우쿠라이나식 발음인 “키이우”로 표기하자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는 우크라이나 수도를 러시아식 발음으로 말해왔던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어는 실제로 약 60% 공통된 단어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두 나라는 어떤 관계였을까?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누비던 유목민족인 스키타이. 스키타이에서 기원한 슬라브인들은 882년 비옥한 수도 키이우다.
강력한 유목민족에서 기원하긴했지만, 몽골 제국 러시아제국 등 비옥한 땅을 탐낸 대국의 침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땅의 역사는 순조롭지 않았다.
세계적인 농업지대이자 유럽의 빵바구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우쿠라이나에 대해 알아본다.
# 러시아 혁명과 우크라이나
1917년 러시아, 피폐한 삶을 바꿔보려는 백성들에 의해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반사회주의 세력과의 내전을 거쳐 1922년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사회주의 공화국들이 “소비에트 연방”을 성립한다.
이때 소련에 가장 먼저 합류했던 국가가 바로 우크라이나다.
레닌은 민족 자결주의에 입각해 우크라이나에 최초로 민족적. 국가적 독립성을 인정했다.
레닌의 결정이 이후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격동의 시기를 지나 사회주의 이념으로 뭉친 소비에트 연맹 탄생과정을 자세히 들어본다.
# 스탈린의 경제 개발, 우크라이나의 비극
레닌에 이어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러시아의 경제 성장을 위해 큰 개혁을 단행한다.
농업에서 공업으로 생산 활동의 체계를 탈바꿈하고자 한 것이다.
단 몇 년 만에 러시아의 농토 대부분이 공업지대가 되었다.
러시아의 빠른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농사로 먹고 살던 민중들의 고통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연재해까지 우쿠라이나를 덮치는데...
우크라이나에 불어 닥친 대기근 “홀로도모르”로 인해 수백만 명이 아사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 홀로도모르 #
홀로도모르는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소련의 자치 공화국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에서 발생한 대기근으로 250만~350만명 사이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어로 “기아로 말미암은 치사”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오스트레일리아. 헝가리. 리투아니아. 미국. 캐나다. 바티칸 시국의 정부 . 국회는 이 사건을 공식적으로 집단살해로 인정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매년 11월 네 번째 주 토요일을 대기는 희생자 추모 기념일로 지정했다.
(위키백과 출처)
현재의 결정적인 순간에도 영향을 미치는 “역사”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시간을 함께 해본다.
# 우크라이나 #
언 어: 우크라이나어
인 구: 41,130,000명(2022년 추계)
인구 밀도: 73명/㎢
종 교: 개신교, 우크라이나정교, 우크라이나 가톨릭교회
국 화: 해바라기
면 적: 604,628㎢ 세계면적단위
기 후: 대륙성기후
여행 경보: 여행금지 (전 지역)
# 러시아 서쪽 흑해 연안에 있는 국가.
11세기에 강성했던 키이우루스가 기원으로 후에 동유럽 주요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19세기부터 우크라이나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1년 독립 후 소비에트 시대의 국영 경제를 신속히 개혁하지 못해 생산의 감소, 인플레이션의 증가, 실업의 확산 등으로 시달렸다.
우크라이나인은 전체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공화국들 가운데 인구 밀도가 높은 편이었다.
경제는 중공업과 농업에 크게 의존한다. 대량의 철과 강철을 생산하는 철금속 산업이 도네츠 분지에 자리잡고 있다.
비옥한 흑토로 겨울밀과 사탕무의 주요 생산국이다.
(다음백과 출처)
2022년 3월 20일 일요일 밤 10시 30분 방송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 지금 현재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