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극장 ”
2022년 5월 23일~5월27일(월~금요일)오전 7시 50분 방송
♡ 비엔나에서 온 부부
꿈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달랐다.
유명한 성악가를 꿈꾸던 그 남자는 가장이자 생계형 성악가가 되었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그 여자는 오 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성악가라는 꿈 하나를 이루기 위해 군 제대 후 무작정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오른 손혁(41세) 씨.
하지만 낯선 외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한국 식당에서 설거지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지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버틸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유학길에 올랐던 그녀역시 외국에서의 삶은 어려웠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했다.
노래가 부르고 싶어 재즈 보컬을 전공한 다연 씨지만 결혼과 연이은 출산, 육아로 꿈은 잠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 손혁 그래도 나는 노래한다
“저는 생계형 성악가입니다”
유명한 성악가가 되고 싶었던 손혁(41세) 씨.
한국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건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한 근는 군 제대 후 “오페라의 본고장”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아무 준비도 없이 향한 그곳은 낯설기만 했다.
경제적 지원도 부족한 상태라 한국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지만, 잠을 쪼개가며 공부해 무사히 대학교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대학교에서 석사과정까지 진학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만난 아내 오다연(38세) 씨.
처음엔 티격태격하는 사이였지만 다연 씨의 단아한 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에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렸다.
그렇게 서로를 의지한 두 사람은 결혼 후 오스트라에서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혁 씨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성악 공부를 하려니 생계가 걱정되었고, 아이들 육아에 꿈을 포기한 아내에겐 미안한 마음뿐이었다고 한다.
거기에 유학생 비자는 취업에 있어 걸림돌었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공연에 나갈 수 없는 일들이 생기면서 결국,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래도 한국에서라면 공연도 행사도 불러주는 곳도 많을 거라 생각했던 손혁 씨...
거기에 유학생 비자는 취업에 있어 걸림돌이었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공연에 나갈 수 없는 일들이 생기면서 결국,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래도 한국에서라면 공연도 행사도 불러주는 곳도 많을거라 생각했던 손혁 씨. 하지만 현실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겠는가.
한국에 온 후 6개월 간 어떤 무대에도 설 수 없었고, 다시 넷째 아이를 임심한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경북 의성의 부모님 곁으로 보내야 했다.
홀로 남은 혁 씨는 서울에서 어떻게든 버텨내고 싶었기에 일용직 일을 하며 노래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럼에도 생활이나 생계가 유지될 틈이 보이지 않앟고, 결국 제대로 이룬 것 없이 혁 씨마저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어려웠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현실을 외면할 순 없는 노릇. 다섯 아이의 아빠였고, 육아 때문에 재즈 가수의 꿈을 포기한 아내와 언제나 믿고 지지해준 부모님이 계셨기에 손혁 씨는 다시 한번 일어섰다.
꼭 성악이 아니어도 괜찮다 트로트면 어떠랴.
찾아주는 곳이 있다면 길바닥이어도 시장 무대라도 두 손 꼭 모아 마이크를 잡는다.
★ 오 남매 오다연 씨의 꿈
“이제는 정말 제가 노력해서 제 길을 찾아가야 할 때인 것 같아요”
꿈 많은 사춘기 소녀는 가족과 함께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노래가 부르고 싶었고 언젠가 내 목소리를 온 세상 사람들이 들어주는 걸 꿈궜던 소녀는 클래식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에서 재즈 보컬을 전공했다.
학교에 다니며 공연도 하고 꿈을 향해 걸어갈 때, 처음 지인 소개로 만난 노래를 부르던 손혁 씨 모습에 반해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결혼 후 연이은 출산과 육아로 다연 씨는 자연스럽게 꿈을 접어야만 했다.
하지만 남편의 꿈만큼은 적극적으로 응원했던 그녀.
그럼에도 현실의 장벽은 넘을 수 없을 만큼 높아졌고, 매일 괴로워하는 남편에게 다연 씨가 먼저 한국행을 제안했다.
20년 가까이 살던 오스트리아 생활을 정리하고 시작한 한국 생활. 친정 식구들이 오스트리아에 있는 다연 씨에겐 모든 것이 낯설었다.
경북 의성에서 그것도 처음 해보는 시집살이는 다연 씨에게 또 하나의 숙제로 다가왔다.
시간이 흘러 문화 차이가 극복도리 무렵, 넷째 아들 준이의 발달 장애 판정은 다연 씨에게는 또 한 번의 견뎌야 할 시련이었다.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강하지 않는가. 관련 서적을 찾아보며, 인근 학교를 찾아다니며 아이에게 도움이 될수 있는 방법을 공부하는 중이다.
그리고 도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다연 씨는 지난해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고민 상담을 들어주고 하고 싶었던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거기에 아이들 등하교와 준이의 상담 치료를 더 편하게 다니기 위해 운전면허 시험에도 도전, 일단 필기시험은 합격했다고 한다.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인 다연 씨의 도전은 현재 진형형이다.
★ 온 가족이 함께라서 “고맙소”
경상북도 의성군 다섯 아이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
27년 만에 동네에 아이들이 찾아왔다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아이가 다섯인 만큼 아침 일상은 분주하기만 한데, 면허가 없는 며느리를 대신해 시아버지의 손상기(68세) 할아버지는 아이들 통학을 담당하고 있다.
거기에 시어머니 정옥자(68세) 할머니는 아이들 간식 하나 더 사준다며, 3년 전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다.
부부에게는 선물 같은 다섯 아이도 함께인데, 첫째 손빈(14세)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 깊은 딸로 엄마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있으며, 둘째 손진(12세)은 때로는 까칠해도 동생들을 챙길 줄 안다.
들꽃을 꺾어 엄마를 위한 꽃다발을 만들어주는 셋째 손민(10세). 밝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넷째 손준(7세), 애교쟁이 막내 손현(3세)까지 사랑스러운 오 남매와 부모님 덕분에 부부는 더 힘을 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요즘은 넷째 준이의 학교 문제로 가족의 고민이 깊어졌는데, 준이를 위해 선 듯 특수학급을 만들어준다는 동네의 초등학교 모두가 하나 되어 도와주니 부부는 오늘도 내일을 위해 살아갈 힘이 난다.
가족을 위해 가족이란 이름으로 똘똘 뭉쳐 하나가 되고 있는 비엔나에서 온 의성 가족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1부 줄거리
경상북도 의성군, 아홉 가족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집.
한편, 무대에 오르랴 음향 장비 담당하랴. 손혁(41세) 씨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다음날 대가족답게 아침부터 분주한 부부.
아이들 챙기느라 바쁜 아내 오다연(38세)씨와 아이들 통학을 책임지며, 안동시립합창단에 출근하는 혁 씨다.
그날 저녁 모두가 잠든 시간, 다연 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