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1 역사저널 그날 323회 ”
2021년 8월 10일 화요일 밤 10시 방송
# 독소전쟁 80주년 기획 제1편 히틀러 VS 스탈린

# 독소전쟁 #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서련을 기습 곡역해 독 . 소 전쟁이 시작됐다.
146개 사단, 300만 명이상의 병력 2,000대의 비행기와 3,000대의 전차로 이뤄진 독일군은 북부, 중부, 남부의 3개 방면으로 나누어 일제히 진격해 들어갔다.
북부군은 발트해를 거쳐 레닌그라드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항했고, 중부군은 모스크바로 진격했으며 남부군은 우쿠라이나의 곡창 지대를 향해 나아갔다.
독일의 목표는 소련을 멸망시키고 그 지역을 독일 민족을 위한 식량과 자원의 산지로 삼는 것이 목적이었다.
1941년 6월 22일 평화로운 소련의 국경지대에 독일이 무차별 폭격을 가한다.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라 할 수 있는 “독소 전쟁”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슬라브 인과 공산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로부터 기인하여 일명 “절멸전쟁”을 표방하고 소련을 침략한 독일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이었지만 어쩐지 독일과 소련의 전쟁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역사 속 “잊힌 전쟁” “독소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 20세기 최악의 독재자, 히틀러 대 스탈린

# 히틀러 #
출 생: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
사 망: 1945년 4월 30일
국 적: 독일
# 히틀러는 20세기초 독일의 정치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당수를 지냈고 대통령의 지위를 겸한 총통을 역임했다.
1941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독일군에 자원 입대했다.
전쟁에서 패배하자 크게 낙담했고 이후 정치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반혁명 반유대주의 정당인 독일노동당 (이후의 나치당)에 입당한 뒤, 총서기와 총리를 역임한 후 1934년 총동에 취임했다.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1944년 연합군이 베를린을 점령하고 독일군이 패망의 길을 걷자, 1945년 총통 관저 지하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로 죽음을 맞이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독재자, 히틀러와 스탈린...
서로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전쟁이 처음부터 예견된 것은 아니었다.
1939년 독일과 소련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독소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고 소련은 전쟁 중인 독일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 스탈린 #
출 생: 1879년 12월 21일
(러시아 조지아 고리 )
국 적: 소련
# 소련 공산당 서기장 (1922~53년) 과 국가평의회 주석 (1941~53) 을 지냈던 소련의 독재자
국제사회의 차가운 주시와 우려 속에서도 소련을 세계 주요 강대국으로 변모시켰다.
공업화와 더불어 농업을 강제로 집단화했으며, 철저한 경찰 테러에 위해 그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2차세계대전 동안에는 독일을 패배시키는 데 한몫했으며, 소련의 지배권을 동유럽의 여러 나라로 확대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소비에트 전체주의의 최고 설계자였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는 말살되었고 생활수준도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강력한 군사력 배양으로 세계를 핵무장의 시대로 이끌었다.
자기 자신의 흉상, 동상,초상 등을 많이 건립해 개인숭배를 강요함으로써 전대미문의 광신적 예배대상이 되었던 그는 20세기 공포정치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듯 보였지만 이들의 밀월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 히틀러의 침략 계획과 절멸 전쟁
독일 아리아인의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히틀러...

그는 슬라브인과 유대인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를 명분삼아 소련을 침략하고자 한다.
이러한 히틀러의 사상은 체계적인 명령 체계로 하달 되어 전쟁 중 소련군 포로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도 지켜지지 못한 채 독일군들의 “절멸 경쟁”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소련군 포로들의 끔찍한 현실을 살펴본다.
★ 독소 전쟁의 판도를 좌우했던 첩보전


# 리하르트 조르게 #
(1895년 10월 4~ 1944년 11월 7일) 혹은 러시아어로 리하르트 벨겔모비치 조르게
일본을 주무대로 활약한 소련의 간첩이다.
그는 신문 기자로 가장하여 독일신문의 일본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추축국의 주요 정보를 뻬내 소련에 넘겨 연합국의 승리에 큰 기여을 하였다.
1944년 일본에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2차 세계대전 전술의 핵심이었던 기민한 첩보전...
독소 전쟁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독일이 기습 침공하기 직전까지도 스탈린에게 정확한 개전 날짜까지 포함된 정보가 첩보로 보고되었는데...
마치 야구 경기에서 사인 하나가 승패를 가르듯, 전재의 승패를 좌우했던 2차 세계대전의 첩보전 속 은밀한 키와 암호들...
역사저널 그날에 깜짝 방문한 전 야구선수 홍성흔과 함께 야구와 전쟁 속 암호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보는 시간을 함께한다.

★ 독일에 맞서는 필사적인 소련의 저항
빠르게 서방 국가들을 점령하며 유럽의 패권을 쥐어가던 독일은 엄청난 기세의 기갑 부대를 필두로 소련을 세 방향으로 침투하는 일명 “바르바로사 작전”을 펼친다.
# 바르바로사 작전 #
바르바로사 작전은 제 2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에서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한 작전명칭이다.
작전 기간은 1941년 6월 22일 부터 1941년 12월까지였으며, 작전 이름은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의 별명이었던 "바로바로사"(붉은 수염)에서 유래됐다.
프리드리히 1세는 명군으로 불린 전설적 임무로 동방에 관심을 기울였기에 대소련전에 걸맞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일설에는 붉은 수염은 스탈린을 암시하기도 한다고 한다.
독일 육군은 공격작전명예에 색깔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어 이것의 발전형이라고도 생각된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소련...
그러나 소련의 국경에서는 독일의 무차별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항전이 펼쳐지는데, 현재도 러시아에서는 당시 전투에서 쓰러져간 병사들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한 노래가 전승기념일에 불리고 있다.
우리에게 드라마 “모래시계”의 OST로 유명한 러시아 곡 “백학”을 직접 들어보고 소련인들의 강력한 저항 의지와 여전히 남아있은 전쟁의 아픔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1,418일이라는 기간 동안 약 3천만 명의 희생자를 낸 “독소 전쟁” 그 비극의 서막을 방송한다.

8월 10일 화요일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 “독소 전쟁“ 80주년 기획 1편 히틀러 대 스탈린” 편에서 이야기 해본다.